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일명 배드뱅크는 총 113만 명의 채무자를 대상으로 16조 원 규모의 채무를 소각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이 정책은 과연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특히 금융권의 부담과 재원 조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배드뱅크의 실체를 면밀히 분석해보자.
배드뱅크의 핵심 구조와 운영 방식
캠코 중심의 채무조정기구 설립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출자해 만든 채무조정기구가 해당 채권을 금융사로부터 일괄 매입해 소각 또는 조정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 방식과는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채무자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채무 감면 및 상환 조건
정부는 채무자의 상환 능력에 따라 차등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채무에 비해 상환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에는 원금을 최대 80%까지 감면해 주고, 남은 금액은 10년간 분할상환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연체 연장이 아닌 실질적인 채무 탕감을 의미한다.
코로나 부채 탕감까지? 당정 ‘민생 추경’ 발표 정리
코로나 부채 탕감까지? 당정 ‘민생 추경’ 발표 정리
전 국민 모두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이 지급됩니다.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마치고, 2025년 제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35조 원 규모의 민생회복 패키지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이번 발표는 보
moneybags1200.com
2008년 신용회복기금과의 차이점
재원 조달 방식의 변화
과거 신용회복기금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재원 조달 방식이다. 2008년 신용회복기금은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과 휴면예금 등 기존에 조성된 자금을 활용했다. 당시 은행권이 출연한 1조 원도 원래 캠코에서 돌려받을 예정이었던 부실채권정리기금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배드뱅크는 상황이 다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 쓸 수 있는 재원으로는 국민행복기금 잉여금으로 조성했던 1000억 원 규모의 장기소액연체지원재단 정도가 전부"라고 밝혔다. 이는 은행들이 직접 출연해야 하는 부담이 과거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권 부담 증가의 현실
총 8000억 원 규모로 추진되는데 소요 재원의 절반은 2차 추경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4000억 원은 금융사 재원으로 조달될 계획이다. 이 중 최소 3000억 원은 금융권의 직접 출연을 통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우려와 현실적 부담
수익성 압박 속 추가 부담
현재 금융권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연체율 상승 등으로 수익성과 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000억원 이상의 추가 출연 요구는 은행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밸류업 전략과의 상충
최근 은행권이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과거 신용회복기금 때처럼 은행들이 돌려받아야 하는 돈이 마땅히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업에서는 은행들이 갖고 있는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더 크다"라고 토로했다.
정책 효과와 우려사항
긍정적 효과: 소상공인 재기 지원
배드뱅크의 가장 큰 장점은 7년 이상 장기 연체 상태에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재기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만기 연장이나 이자 유예가 아닌 원금 감면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려사항: 도덕적 해이와 시장 질서
하지만 과도한 채무 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한 차주들과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향후 대출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3분기 세부 계획 확정
배드뱅크 설립 및 세부적인 사업프로그램 확정은 올 3분기에 이뤄질 예정이다. 금융권과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인 출연 규모와 운영 방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교한 정책 설계의 필요성
성공적인 배드뱅크 운영을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수적이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재기 지원이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융권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부담 분담 방안도 필요하다.
결론: 새로운 출발인가, 또 다른 부담인가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소상공인 채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8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원과 금융권의 직접 출연 부담, 그리고 도덕적 해이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성공적인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정부와 금융권, 그리고 채무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진정한 '새 출발'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부담만 가중시킬지는 앞으로의 정책 설계와 실행에 달려 있다.